【동북아신문=리강철 객원논설위원】지난 6월 19일 평양을 방문한 푸틴대통령과 김정은총서기사이에 “포괄적 전략 파트너싶”협정이 체결되었다. 군사동맹에 가까운 이 협정은 “두 나라는 상호간어 어느 나라가 제3국의 공격을 받을 때에는 서로 지원을 한다”라고 명기했다. 동시에 이협정에는 “두만강 국경에 공로다리를 건설한다”라는 내용도 담겨있다.
이에 앞서 푸틴대통령은 5월16-17일에 방중하여 시진핑주석과의 회담에서 두만강 하류(방천)에서 중국선박이 일본해(동해)에로 들어가는 문제에 관하여 김정은총서기와 건설적 대화를 할것이라고 약속한바 있다.
나의 연구분야인 두만강삼각주 국제개발이 이번 조러간 정상회담에 의해 천재일우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겠는가 라고 본다.
33년 전인 1991년8월에 장춘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개최된 동북아 경제포럼에는 동북아 6개국과 연합국개발계획국이 참여하고 길림성의 두만강연구 전문가가 두만강3개국지역에 국제도시를 건설하고 방천에 롯테르담항구의 규모에 상당한 국제항구를 건설한다는 구상이 발표되여 참가자들의 주목과 관심을 끌었다.
그리하여 연합국 뉴욕본부에는 1995년에 ‘두만강사무국’이라는 기구가 설립되였으며 이듬해에는 북경에 사무국을 이전 하였다. 사무국에는 동북아5개국(일본정부불참가)의 정부관원들로 구성된 팀이 형성되고 두만강개발사업을 추진하게 되였다.
1991년에 일본에 유학온 필자는 94년에 토쿄의 릿교대학 대학원에 들어가서 국제경제학을 전공하기로 했는데 이 소식을 접하게 되자 이는 나한테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연구 테마를 두만강삼각주 국제 개발로 결정했으며 그후 30년간 두만강 개발을 중심으로 동북아 경제협력에 관한 연구활동을 줄곧 해왔다.
이는 단순히 나의 연구분야 뿐만 아니라 나의 천직(Calling)이며 하느님(믿지는 않지만)이 부여한 역사적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결의 했던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연변에서 태여났으니 고향이 두만강개발 사업으로 새로운 발전기회를 얻게 되였고 나 또한 3개국나라의 언어를 공부하게 된것이 중요한 자본이고 경쟁력 우세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북경시위당교에서 공산당건설을 전공으로 하면서 러시아어를 자습했는데 그것이 10년후에 나의 인생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고는 당시에는 상상조차 못했던것이다.
일본에서 알바로 생계를 유지하는 가난한 유학생활임에도 불구하고 95년8월에는 장춘에서 개최되는 두만강개발에 관한 국제포럼에 여비를 마련하여 일부러 참가하였는데 그기회에 만난 학자와 전문가들 연분이 나의 중요한 자산이 되여 나중에 일본에서 국회의원과 일류학자들과 만나는 중요한 계기로 되고 그결과로 연구 일자리가 생기고 전문가로 되고 대학교수까지 되였던것이다. 인생에서 만남과 연분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였다.
회의 후 그길로 고향 연변에 돌아가 인생처음으로 훈춘을 방문하여 두만강개발 지역 현지조사도 할수 있었다. 원정리(중조세관)와 방천 그리고 장령자 (중러세관)까지 현지방문을 하였으며 방천의 전망대에 올라가면 육안으로 두만강건너의 조선 마을이 보이고 닭우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이며 로시아의 포시에트항구도 보이고 15킬로 떨어진 일본해(동해)도 볼수 있는 특이한 유람지이기도 하다. 유감스럽게 중국의 두만강에서 동해로의 출구는 조러두나라의 영토이기에 막혀있는 상황이였다.
그후 매년 연변과 훈춘의 두만지지역 방문조사를 하였으며 97년에는 원정리다리를 넘어서 라진과 선봉 자유경제지대를 방문하고 98년에는 흑룡강의 수분하를 경유하여 블라디보스톡(海参威)을 방문하여 처음으로 러시아인들과 러시아어로 대화하를 체험하게 되였다.
최근에는 2017년 연변대학에서 개최하는 국제학회에 참가하는 기회에 훈춘 경유로 3번째의 라진방문을 하여 현지의 기업가와 직접인터뷰도 하게 되였다. 일본여권의 소지자로서 비자없이 입국할수 있는 방법과 루트를 알았기에 아주 순조롭게 국경을 넘어 방문 여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중국정부는 1990년대부터 두만강개발에 크나큰 관심을 가지고 정책지원을 하여 훈춘을 변경개방도시로 지정하였으며 또한 2002년부터는 [동북진흥] 정책을 대대적으로 펼쳐 많은 인푸라시설 투자도 형성되였으며 2015년에는 고속철도가 훈춘까지 연장되고 훈춘시는 급속도로 발전되여 아름다운 변경도시로 변신하였다.
그러나 3개국의 정치관계가 긴밀하게 유지되지 않고 조선의 핵무기개발등 문제로 국제관계가 복잡다단하여 두반강개발사업은 예상대로 추진되지 못하였던 것이다.
작년 9월에 시진핑주석은 할빈을 방문할때 “새 시대 동북 전면진흥을 추진할데 관한 좌담회”를 개최하여 중국의 경제상황이 어려운 가운데서 동북진흥을 추진할려는 결심을 보여주고 있다. 같은해 9월에 블라디보스톡에서 개최된 ‘동방경제포럼’에서 푸틴대통령은 러시아의 원동지역 개발전략을 중점적으로 착수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는 가운데 이번 푸틴의 평양방문을 통해 김정은총서기도 두만강 개발에 더욱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추측할수 있다. 조중러 3개국정상이 긴밀한 협력관계를 형성하게 되면 조선반도의 안전보장면에서 힘의 균형으로(Power of balance, 조중로3국협력 vs 한미일 3국동맹)이 이루어져 미한일3국과의 대립과 경쟁으로 [신냉전]적 요소는 강화될것이 예측되나 다른한면으로는 동북아 지역과 조선반도의 지역안정에는 도움이 될수도 있다. 안전이 보장된 상황에서 김정은정부는 더욱더 적극적으로 대외개방하고 경제개발에 주력할수 있는 조건이 주어졌다고 필자는 보고 있다.
그러데 러시아의 푸틴대통령은 어느 정도까지 진심으로 중국 및 조선과 협력할 것인가? 에 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아있다. 특히 중로관계는 표면상으로는 친밀한 것 같지만 양국은 대국이기에 국제사회에서 경쟁관계가 의연히 존재하며 또한 양국은 충분한 신뢰관계가 형성되였다고는 볼수 없다.
20여년전에 푸틴대통령과 후진토국가주석의 정치적 결정으로 2004년 10월14일 중러국경협정이 체결되였다. 그에 앞서 중국정부는 두만강하구의 러시아 영토를 중국에 양도하고 서부 신강지역의 영토로 교환할것을 요구한적이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러시아는 중국의 대국화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중국측의 요망을 들어주지 않았던 것이다.
중국은 훈춘의 방천에서 직접 일본해로 들어갈수 있을것을 원하고 있는겄이다. 만약 중러관계가 아주 친밀하고 상호 신뢰가 구축되였다면 러시아가 중국의 요구를 들어주는것이 당연할것이다.
중국의 러시아에 대한 불신감은 역사적으로 형정된 것이다.
1689년 청국은 러시아와 ‘네르친스크조약’을 체결하였는데 이것은 평등한 조약이였고 시베리아 동부와 연해주지역은 청국의 영토로 확정되였던 것이였으나 그후 청국은 1840년 영국과의 아편전쟁에서 패전하여 불평등조약 맺게되고 그후에는 연이어 프랑스 독일 등 서구나라들이 중국과 불평등조약을 체결하니 로시아도 1860년에 중국동북에 진입하면서 청조정부를 압박하여 [애훈조약]과 [북경조약]을 체결하여 시베리아와 극동지역의 160만 평방길로메터의 영토를 러시아영토로 만들었다고 중국의 역사교과서에는 기재되여있다.
2004년에 국경확정조약을 체결할때 중국의 네이티즌들은 뺴아낀 중국영토를 러시아영토로 영원하게 인정했다고 중국정부는 매국정부라고 비판했던 경우가 있다.
이번 중로간 정상회담과 조로간 정상회담에서 두만강지역공동개발 의제가 제기되여 전향적으로 검토되고 있는듯하나 중국이 앞으로 방천으로 부터 일본해(동해)로 자유롭게 드나들수 있겠는지? 현재 상황에서는 의문이 든다.
또한 조러양국이 군사동맹에 가까운 상호협력협정을 체결한데 관하여 중국에서는 어떻게 보고있는지 지금단계에서는 미지수이다. 왜냐하면 소련이 붕괴된후 조선에 안보면이나 경제면에서 도와준 나라는 중국이였기에 중국의 입자에서 보면 러시아에 연인을 빼아긴 상황이라고 볼수도 있다.
최근 중조로 3국관계가 급속히 그리고 미묘하게 변화하고 있는데 그것이 동북아지역의 지정학에 어떤영향을 미칠것인가에 관해서는 금후의 관찰과 분석이 필요할것이다.
일반사단법인 동북아미래구상연구소(INAF) 소장 리 강철연구소에 관한 소개는 INAF홈피를 찾아 보세요. https://inaf.or.jp/
필자에 관한 소개는 한국 [동포세계신문]에 연재한 [리강철 자서전]을 참조하세요.
출처 : 동북아신문(http://www.dbanews.com)